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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에 맺힌 멍울이여 관계는 영원할 수 없는 허울이다. 어느새 가까워졌다가, 정신을 차리면 멀어져 간다. 우정의 농도가 진해질수록 헤어짐을 예견하는 슬픔이 진해진다.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관계의 끝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무력해진다. 나랑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쇼코는 소유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마치 거울 앞에서 다짐하듯 "나는 여러 도시를 다닐꺼야."라고 말한다. 쇼코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할아버지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려는 쇼코의 영혼을 붙잡고 있다. 나는가족을 쇼코처럼 생각한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튼튼한 울타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숨통을 옥죄는 감옥이다. 착한 딸이 되어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숨쉬기가 힘들다. 정상적인 척, 우.. 더보기
박화영 - 이환 *** 스포주의 *** 보는 내내 불쾌한 골짜기가 떠올랐다. 영화는 현실적 판타지를 그리는 게 정석이었는데, '박화영'은 다큐멘터리마냥 현실을취재한 것 같았다. "미로의 끝이 낭떨어지였음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짧은 머리에 우왁스러운 행동. 허세와 욕설은 위협적이기 보다는 비웃음을 유발한다. 박화영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아지트를 대주며 '엄마'라고 불리길 원하지만, 맞고 무시당하는 이상한 관계를 맺고 있다. 결핍의 갈망은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박화영은 엄마가 필요했던 거 같다. 돈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자신을 보살펴주는 누군가. 박화영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래보였다. 엄마가 싫어서 가출을 했는데, 정작 '엄마'라고 불러달라는 아이 옆에 붙어 있는다. 중학생 때, 박화영과 비슷한 남자애가.. 더보기
아가씨 - 박찬욱 *** 스포주의 *** 히데코의 기품과 숙희의 당돌함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어렸을 때부터 이모부에게 학대를 당한 히데코는 저택에서 도망가기 위해 후지와라 백작과 손을 잡았다. 자신 대신 정신병원에 들여보낼 하녀로 숙희가 저택에 들어왔다. 이 영화의 원작은 '핑거스미스'이다. 몰락한 귀족 아가씨와 하녀의 사랑이야기. 구성은 비슷하나 2부부터 이야기의 전개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3초다. 히데코와 숙희의 첫만남을 보면 히데코가 숙희를 바라보다 눈을 피하고 다시 숙희를 바라본다. 찰나의 시선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히데코는 숙희에게 첫눈에 반했다. 숙희는 아가씨가 아무것도 모르는 쑥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숙희를 귀여워하는 히데코가 .. 더보기
주먹왕랄프2: 인터넷 속으로 - 필 존스턴, 리치 무어 *** 스포주의 *** 무지한 순수함의 위험성을 상기시켜주는 영화. 랄프가 벌이고 바넬로피가 수습하는 우당당탕 모험 일기. 1편을 보지 않아 랄프의 성격이 원래 이런건지, 2편에서 유난히 심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약간 속이 터졌다. 애니메이션 특성 상 사건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걸 알지만, '그만해...'를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래도 인터넷을 구현해낸 방식이 흥미로웠다. 인터넷 세계관이 진짜 저럴 거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어휴..." 착하지만 모자란 친구. 나를 향한 애정이 느껴져 미워할 수도 없는 친구. 바넬로피를 위한 일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바넬로피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랄프는 가장 친한 친구인 바넬로피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다. 6년 동안 모든 걸 함께 했으니 인생의 일부분 같이 느낀다. 하.. 더보기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 도이 노부히로 *** 스포주의 *** '전교 꼴지, 명문대 가다!' 이 영화는 츠보타 노부타카라는 학원강사가 학년 꼴찌를 일본의 명문대인 '게이오대학교'에 합격시킨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집필한 에세이인 "학년 꼴찌 갸루가 1년만에 편차치 40을 올리고 게이오 대학에 합격한 이야기"가 원작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너가 나를 응원해주러 왔구나." 사야카가 게이오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생님의 지도 덕도 있지만, 스스로의 능력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과 성실한 행동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친구를 만들고 싶어 꾸미는 데만 신경쓰다보니 어느새 양아치가 되있었다. 사야카의 엄마는 사야카의 선한 면을 믿기에 무슨 일을 하던 지지하고 응원해준다. 사야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 더보기
미래의 현재는 행복하길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지루할 때, '여중생A'라는 웹툰을 추천받았다. 그림체가 귀여워서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괜찮아."라며 내 마음을 위로한다. 나는 미래가 되었다가, 재희가 되었다가, 백합이가 되기도 한다. 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다. 상대방과 무슨 얘기를 해야될 지, 혹시 내 얘기가 재미없을까 싶어 쉽게 말을 못 건다. 용기가 실망으로 변할까봐 지레 겁먹고 숨어버린다. 지금은 인간관계에 유연해졌지만, 예전에는 끊어진 인연은 모두 내 탓 같았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망가지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끊어질 관계는 시기가 다를 뿐이지 어떤 형태로는 끊어진다. 맞지 않는 톱니바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다. 미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