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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感

글자에 맺힌 멍울이여

 

관계는 영원할 수 없는 허울이다. 어느새 가까워졌다가, 정신을 차리면 멀어져 간다. 우정의 농도가 진해질수록 헤어짐을 예견하는 슬픔이 진해진다.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관계의 끝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무력해진다.

 

 나랑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쇼코는 소유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마치 거울 앞에서 다짐하듯 "나는 여러 도시를 다닐꺼야."라고 말한다. 쇼코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할아버지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려는 쇼코의 영혼을 붙잡고 있다.

 

 나는가족을 쇼코처럼 생각한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튼튼한 울타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숨통을 옥죄는 감옥이다. 착한 딸이 되어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숨쉬기가 힘들다. 정상적인 척, 우울하지 않는 척에 지쳤다. 잠들기 직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마음대로 얘기해보자면, 다음날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아무런 고통 없는 편안한 죽음 만이 나를 구원해준다. 나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날 야반도주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생각만 하지만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가족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족쇄는 나를 묶어놓는 수단이자 살아가게 만드는 안전선이다.  

/쇼코의 미소      

                                                           

 

조각난 자리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생긴다. 부숴진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누구의 잘못 없이 끝나버린 관계에는 상실감만이 자리잡고 있다.   

/씬짜오, 씬짜오  

                                                                       

 

 

"책임지지 못할 거면 모르는 척 해." 

길고양이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동물농장을 보며 유기견을 입양하자고 외치는 내게 말했다.

"한 번 밥을 주기 시작하면 여기에 터를 잡을텐데. 너가 평생 여기 살 거 아니면 그냥 주지마."

나는 엄마의 매정함이 싫었다.

초등학생 때,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가 돌봐주던 길고양이가 있었다. 당시 나와 앉은 키가 비슷했던 엄청 큰 고양이였는데, 조만간 새끼를 낳을 거라고 했었다. 나중에 구경하러 와도 되냐고 허락을 받고 신나서 집에 돌아왔다. 엄마한테 길고양이를 만졌다고 자랑하자 크게 혼났었다. 그래도 새끼를 보러 곧잘 가곤 했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지상 주차가 가능했었다. 어느날 사람들이 주차장 앞에 모여 웅성웅성거렸다. '뭐지?'하고 가봤더니, 새끼 한 마리가 주차하던 차에 치여 죽어 있었다. 장기가 배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는데, 숨이 끊어지지 않아 미세하게 떨리는 몸뚱아리가 있었다. 내 기억은 여기서 끝이다. 길고양이 가족이 더이상 아파트에 오지 않았다는 것 빼고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아름다운 이별은 따뜻한 얼음만큼이나 모순적인 말이다. 상처 없는 단절이 가능할까? 어느 한 쪽의 속은 썩어 문드러져 있을 테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못 본 척하는 것일 뿐이다.                                                                     

/한지와 영주

 

 

시간은 아픔을 치유하는 연고다. 죽을 만큼 아파도 언젠간 새살이 돋고 상처가 옅어진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변한 것일 뿐, 처음부터 그랬던 사람은 없다. 세월의 풍파는 신념의 모양을 깎는다.

선두는 가장 모진 바람을 맞는 자리다. 저기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                       

/먼 곳에서 온 노래

 

 

나는 운이 좋아 살아있을 뿐이다. 나 혹은 가족, 친구. 누구든지 그 자리에 있었을 수 있다.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세상을 망친다.'

우리는 제3자의 시선을 가질 자격이 없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간과하며 산다. 대중은 진실을 파헤치고 가해자들에게 죄값을 치르게 만들어야 한다.

죄 없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욕심에 심연으로 끌려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안식처로 돌아가길 빈다.  

/미카엘라                                                                                                                           

 

 

완벽한 거짓말은 없다. 너희들이 하는 말, 행동의 의미를 눈치챈지 오래다. 나를 위한 거짓말이 너희를 위한 거짓말이었음을 알기에 나를 위해, 너를 위해 모르는 척을 한다.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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