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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 켄 로치

*** 스포주의 ***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댄은 심장병에 걸려 질병 연금을 받아 생활했다. 어느날 연금심사에서 탈락해 지원이 끊긴다. 생활에 어려움이 생긴 댄은 일은 못하지만 구직연금을 받기 위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증거가 부족하다며 제재를 당한다.

 

 

 댄은 할아버지다. 인터넷보다 연필이 익숙한 세대다. 하지만 연금 신청은 모두 온라인 신청을 요구한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젊은사람들은 1시간이면 끝날 일인데 댄은 며칠을 소비한다.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정년퇴직을 한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다. 애초에 인터넷 이용을 요구하는 거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시민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떽떽거리는 귀찮은 존재일지 몰라도 시민은 연금이라는 동앗줄을 붙잡으려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이조차 쉽지 않다. 정부기관은 정체성에 부합한 활동을 하지 않는 모습이다.

 정부의 존재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닌 걸까? 엄격한 규정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 걸까? 혼란스럽다. 누구를 위한 정부이고 복지인가. 나를 이해시킬 수 있는 변명이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댄은 친절하다질병연금 문의를 위해 들린 시청에서 연금에서 제재당하고 직원에게 쫓겨나가기까지 하는 케이티를 만난다. 케이티는 길을 잃어 약속시간에 늦은 것일 뿐. 그런 케이티의 편을 들어주는 건 댄 밖에 없다. , 옆집에 사는 흑인 남자아이에게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거나 케이티의 아이들을 놀아주는 등 행동에 친절함이 뭍은 사람이다. 하지만 한없이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시청 직원에게 화가 나 벽에 낙서를 하거나 구직연금을 받기 위해 일을 할 생각이 없지만 이력서를 내는 등 양심에 반하는 일도 한다. ,

 일상에 존재하는 조금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댄에게 구원받은 사람들,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또한 댄에게 감동받고 열광한다. 그 이유를 영화가 끝나고 내용을 곱씹을 때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세상엔 이정도로 친절한 사람조차 없다. 인간관계를 피곤해하고 냉대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이 사회에서 친절은 얼음 속에 갇혀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며 자기만의 공간을 침범하지 말라는 듯이 경고를 한다. 나조차도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간빙기라고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지금 빙하기에 놓여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